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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칼럼 119] 정치영 학예연구사의 "문화재 보호법과 우영우"

지난 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회에서 다루어진 ‘소덕동 도로구역결정취소 청구소송’은 국토 개발과 문화재 보존 사이의 긴장이 고조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담아 내었다.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실제로 ‘소덕동 팽나무’와 ‘도로재개발’이 보여주는 갈등 구조는 현재 진행형이다. 신문 앞면에 ‘택지개발지구에서 문화재 발견... 사업 차질 우려 커져’와 같이 자극적인 언론 기사가 있는가 하면, 뒷면에는 도롱뇽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포크레인 앞에 드러누운 환경운동가들의 사진이 실리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재 보호의 기본 원칙

우리나라에는 1962년 제정되어 20차례의 개정을 거쳐 온 문화재보호법이 있다. 이 법은 문화재를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과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앞으로 1년 후에는 ‘국가유산’이라는 명패로 바뀌게 될 ‘문화재(文化財)’의 개념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이다. 그 범주에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가 있다. ‘국보 1호 남대문’으로 외운 한양도성의 숭례문, 안동 하회 탈춤과 판소리, 경주 첨성대와 황룡사지, 부여 낙화암, 울릉도, 장수하늘소, 먹거리로 더 익숙한 제주 흑돼지도 문화재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지정문화재’ 주위에는 일정 정도의 ‘보호구역’이 설정된다. 문화재와 함께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주변 환경이 ‘역사문화환경’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문화재 보호법이 천명한 문화재 보호, 즉 보존, 관리, 활용의 기본 원칙은 원형유지이다. 그리고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이 법률은 다른 법률보다 우선한다.


매장문화재란 무엇인가

그런가 하면 ‘매장문화재’라는 것이 있다. 땅이나 물 속에 매장되어 있거나 건조물에 포장되어 있는 유형의 문화재, 지표·지중·수중에 생성, 퇴적되어 있는 동굴, 화석 등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큰 것을 이른다. 밭을 갈다 발견한 돌도끼, 쭈꾸미 그물에 걸려 올라온 고려청자, 바닷가 절벽에 노출된 공룡알 화석이 다 그런 것이다. 이러한 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된 지역을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라 한다. 이 역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하며, 조사와 발굴도 법률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개발사업을 시행하는 자는 매장문화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공사 도중 매장문화재를 발견하면 ‘즉시’ 해당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 이는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할 법률」(약칭 매장문화재법)에 규정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법이 「문화재보호법」에서 특별히 따로 규정한 법률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은 발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매장문화재가 발견된 곳에서는 공사를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3만 제곱미터 이상의 면적에서 건설공사를 할 경우 매장문화재 지표조사의 대상이 된다. 지표조사란 건설공사 지역에 문화재가 매장 혹은 분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전에 실시하는 조사이다. 발굴조사와 달리 땅을 파지 않고 육안으로 현지의 지표를 확인하는 조사이며 각종 기록 자료를 검토한 결과를 종합하여 매장문화재 유존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문화재청에 지표조사 기관으로 등록된 기관에 사업시행자가 조사를 의뢰하여 실시할 수 있다. 지표조사 결과 매장문화재가 없으므로 공사를 시행해도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매장문화재 유존 지역은 원칙적으로 발굴할 수 없다. 연구, 정비, 공사를 위해 부득이한 경우, 멸실 훼손이 우려가 있는 경우만 예외이다. 이 경우에도 문화재청의 관리 아래에서 엄격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지표조사 결과 보존조치가 필요한 경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업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문화재청은 물론 허가권을 갖고 있는 시·군·구청에도 결과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 보존조치

지표조사에 따른 매장문화재 보존 조치는 현상보존, 매장문화재 전문가의 참관조사,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등 세 가지 중 하나의 방안이 제시된다. 사업시행자는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지표조사 보고서를 건설 허가 신청시 함께 제출하여 행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참관조사는 매장문화재 관련 전문가가 건설공사 시작 시점부터 현장에 참관하여 매장문화재 출토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발굴조사는 사업부지의 면적에 대비하여 발굴 면적이 2% 이하인 표본조사, 10% 이하인 시굴조사, 전체를 발굴하는 정밀발굴조사로 나뉜다. 표본조사와 시굴조사는 매장문화재가 실재로 존재하는지를 확정하고 분포 범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정밀발굴조사로 이행된다. 발굴조사 역시 문화재청에 등록된 발굴조사기관이 수행할 수 있으며, 허가를 받아 착수할 수 있다. 발굴된 매장문화재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보존조치가 이루어 진다. 현지보존, 이전보존, 기록보존 등이다. 현지보존은 그야말로 그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니 그 범위는 공사를 할 수 없다. 이전보존은 사업부지의 다른 곳이나 박물관 등으로 옮겨 보존하는 것이고, 기록보존은 발굴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그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므로 보통 사업부지에서 공사를 시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화재 보존조치를 완료하기 전에는 사업허가를 얻을 수 없다. 보존조치 없이 건설공사를 시행하면 공사중지 명령을 받게 된다.

매장문화재 보존조치에 드는 비용은 발굴을 허가받은 자 또는 사업시행자가 부담해야 한다. 다만, 대지면적 792㎡ 이하의 단독주택, 같은 대지에 건축물 연면적 264㎡ 이하인 개인사업자의 건설공사, 대지면적 2,644㎡ 이하의 농어업 건축물과 공장 건축 등과 관련된 발굴조사 경비는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지표조사는 계획 수립 완료 전에 해야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보이지만 우선 문화재 보존의 기본 원칙은 원상유지이며,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은 원칙적으로 발굴할 수 없다는 원리를 기억해 두자. 건설공사의 허가 조건으로 매장문화재 보존 조치 이행은 필수적이며, 그 시작은 지표조사이다. 그러나 발굴조사까지 진행된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게 된다. 사업시행자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 규칙」에는 지표조사를 실시하는 시기가 밝혀져 있다. 분명 ‘공사 시행계획 작성 완료 전’ 또는 ‘실시 계획 수립 완료 전’이라 했다. 그러나 보통 이와 같은 법령에 대한 이해 없이, 때론 무시한 채 사업계획을 세우고, 빨리 허가만 받으려 하며, 곧장 공사를 시작할 듯 포크레인을 대기시켜 놓는다. 그리고 발굴조사까지 이르게 되면 ‘문화재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한다.

언론의 지면에 문화재가 재산권을 침해하는 유해 요소인 듯, 경제를 망치는 주범인 듯 호들갑을 떠는 대신 이런 법의 기본 정신과 원리를 차분히 소개하고 절차를 안내해 주는 것이 본연의 도리가 아닐까? 건물을 짓거나 공사를 계획하고 계신 분이라면 「문화재 보호법」과 「매장문화재보호법」의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을 읽고 이해해 둔다면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서울의 한 기초자치단체가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현지보존 조치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주거지는 문화재보호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문화재가 아니다’, ‘땅 파면 나오는 옛날 흔적이 다 문화재는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우영우 변호사가 피고 대리인이라면 뭐라 변론할지 문득 궁금해 진다. ♣




서울 잠실에서 백제 사람들의 주거지(집자리)가 빼곡한 마을유적이 발굴되었다. 한 기초자치단체가 ‘주거지는 문화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 칼럼니스트

사회적기업 케이마스(한국경영자문원) 자문위원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발굴조사 팀장 정치영





▣ 경력

-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발굴조사 팀장

- 고고학자

- 서울 석촌동고분군, 부여 송국리유적 등 주요 사적 발굴

- 한국고고학회, 백제학회 정회원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동국대학교 등 강사

- 문화재청 설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문연구원




출처 : 중부연합뉴스(http://www.kaji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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