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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칼럼 43] 다시 생각해보는 수능시험의 의미와 대학교육의 미래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추위가 왔습니다. 지난 주만 해도 비록 일교차는 있었지만 야외 활동하기가 참 좋은 예쁜 가을날이었는데 수능시험이 다가오자 신기하게도 기온이 뚝 덜어지고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곱게 물들어 자태를 뽐내던 낙엽도 속절없이 떨어져 거리를 축축히 덮어버렸습니다.


이 계절이 오면 교육에 평소 관심이 없던 사람도 수능시험이라는 대학입시제도, 대학, 교육 정책 등에 새삼 관심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관심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반짝 관심이 높았던 학부모들도 대부분 본인의 자녀들이 수험생의 위치를 벗어나면 크게 관심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이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수능시험일은 매년 11월 세 번째 목요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이 고3 학생들과 재수, 삼수를 하는 수험생들에게 쏠려 있습니다. 유명 사찰에는 백일 전부터 지극 정성으로 자녀의 합격을 비는 백일 기도와 기원을 바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방송에 나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은 어쩌면 19살에 맞이하는 11월의 어느 하루에 평생 살아갈 삶의 질과 방향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 절체절명의 기회와 위기의 순간입니다.


수학능력시험(修學能力試驗)은 1994학년도 신입생부터 도입된 시험입니다. 그 이전에는 학력고사(學力考査)를 봤습니다. 여러분은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의 차이를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둘 다 대학 입학을 위한 국가 시험입니다. 필자는 물론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학력고사(學力考査)는 말 그대로 학력(學力)을 측정하여 순위를 매기는 시험입니다. 12년의 정규 교과 과정을 마친 학생들의 학력의 높이, 학업 성취도라는 기준으로 실력의 수준을 평가하여 점수화하고 점수는 서열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340점 만점이라면 만점자를 전국 수석이라 불렀습니다. 339점 차점자를 전국 차석, 338점 3등, 337점 4등… 이렇게 수십만명 수험생 모두에게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시험제도입니다.


수학능력시험(修學能力試驗)의 성격은 조금 다릅니다. 상위 고급 교과과정인 대학교과 과정을 수학(修學)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일종의 자격(資格) 시험입니다. 그래서 도입 초기에는 상대평가에 의한 등급만 주어졌습니다. 상위 4%는 1등급, 차상위 7%는 2등급… 이런 식으로 전체 수험생을 정규분포화 하고 9등급으로 나누어 등급을 부여했습니다. 만점을 받은 학생과 4% 안쪽에 있는 학생이 서열없이 똑같이 1등급의 ‘자격’을 받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미국의 SAT와 같은 제도입니다. 일단 수능시험에서 최소 자격 요건을 인정받고 대학별 합격 여부는 다양한 전형 요소, 즉 고교활동, 논술(에세이), 자기소개서, 학습활동계획서, 독서록, 각종 대회 수상 기록, 예술 특기 등 추가적인 학생의 재능과 특성이 최종 대학 합격의 요인으로 작용되도록 설계가 된 입시제도입니다. 그래서 최종 합격자를 선별하는 ‘입학사정관’ 이라는 심사위원이 필요한 제도입니다.


처음 도입할 때는 학력고사식 서열을 없애고 최소한의 자격 기준만을 제공하여 학생의 다양한 재능과 특기를 반영한 다원적이고 창의적인 인재 선발을 목표로 한 입시 제도였습니다. 시험 문제를 잘 푸는 일률적인 기준의 인재보다는 21세기를 이끌어 갈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진취적인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제도로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입시제도의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은 그렇게 창의적이고 다양한 재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던 수학능력시험은 2007년 수능시험을 기점으로 등급만 알려주고자 했던 ‘자격’ 시험으로서의 본래 도입취지는 폐기됩니다. 2008년부터는 과목별 원점수와 표준점수, 그리고 백분위 석차가 제공되어 과거 학력고사식 서열화된 성적 결과표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논술, 구술, 에세이, 수상실적 등 대학마다, 학과마다 다양해 16종이 넘던 입시 전형도 학생부 종합전형, 교과전형, 논술 전형, 특기 전형 등으로 대폭 축소되어 단순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과목별 반영 비율 등 백분위 환산 점수는 학교마다 달라 처음 접하는 수험생 부모들에게는 신세계를 맛보게 합니다.


이렇게 대학입시제도가 다원적이고 창의적으로 확산되어 가다가 다시 학력고사식 서열화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다원화된 선발 방식이 가져온 합격자의 학력 수준 저하입니다. 많은 대학 교수님들은 다양한 기준으로 선발된 신입생들이 기초 영어실력, 기초 수학실력이 부족해 대학 수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없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학력고사로 학업 성취도를 기준으로 선발했던 선배들보다 신입생들의 학업 수준이 한참 낮아졌음을 발견합니다. 결국 수시 합격자에 대한 수능최저등급 기준을 도입하는 등 학업성취에 대한 최소 기준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교수님들은 대학 신입생 선발의 심사위원이자 신입생 선발 정책 입안자의 지위에 있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신입생 선발 경험이 점차 반영되어 가면서 명문대일수록 최저 학력 기준이 엄격해지고 백분위 점수를 통한 선발이 강화됩니다.


둘째, 다원화된 선발 방식이 다원화된 사교육을 촉발하고 조장하게 됩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주요과목인 국영수 과목에 대한 족집게 고액 과외가 성행하여 빈부 격차에 따른 학력 차이가 비례하게 되어 가난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좌절감이 컸습니다. 강남 8학군이 유명해진 것도 사교육 1번지로 명성(?)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폐단을 제거하고 사교육 억제 차원에서도 수학능력시험은 도입 초기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입시 전형은 다양한 사교육을 더 만들어 냈습니다. 일종의 풍선효과처럼 어떤 유형의 입시제도를 도입해도 그에 대비하는 사교육이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경제 소득 수준의 발전과 한 자녀, 두 자녀 문화는 사교육 시장을 더욱 키웠습니다. 그리고 빈부 격차에 따라 고교 시절의 체험활동, 학습활동의 반경과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부유한 전문직 가정의 학생일수록 다양한 입학 전형이 요구하는 다양한 학습 경험과 활동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수학능력시험도 결국 빈부의 격차를 줄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년 전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들의 대학 입시 준비 활동은 그 당시 명문고, 전문직 집안의 보편적인 품앗이 입시 준비 활동이었습니다.


셋째, 대학별 최종 선발 과정의 비용 증가와 비효율 증가입니다. 폭넓은 등급만으로 나누어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별 합격자를 ‘선별’하는 작업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 전문성 등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수험생이 70만명이라면 이 중 4%인 2만8천명이 1등급을 받게 됩니다. 서울대학교는 신입생 정원이 약 3천명입니다. (연세대 약 3천명, 고려대 약 4천명 등). 1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아마도 대부분 서울대학교에 있는 학과에 지원하게 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1등급 2만8천명 중 3천명을 제외한 2만5천명을 탈락시켜야 합니다. 대단히 전문적이고 어려운 추가적인 선별 과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중위권 대학은 이 선별 과정에 양적으로만 어림해도 3~4배 더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풀이 능력으로 서열이 정해지고 합격과 불합격이 정해지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양한 입시 제도는 정량적인 평가보다 정성적인 평가가 크게 반영되어 당락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입시 부정의 빈틈이 제공될 수도 있습니다. 학연, 지연, 사전 사교육 활동 등 인맥을 동원한 입시 부정이 실제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유력 인사들은 학연, 지연을 통해 교수들을 찾아가 자녀들의 합격을 청탁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역반응으로 정성적인 평가가 배제된 가장 객관적이고 반박 불가한 문제 풀이 성적이 가장 공정하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수시 입학 정원을 줄이고 정시 입학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믿음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언뜻 가장 공정한 과정과 인과응보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험을 본다고 그것이 무조건 공정한 상황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기사가 딸린 벤츠 승용차를 타고 시험장에 올 것이며 어떤 이는 추운 겨울 발을 동동 굴러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그 시험장에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시험장까지 오는 준비 과정이 공정하지 않기에 이미 그 시험의 결과도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 있습니다. 국가의 교육 정책은 이와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있는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 올려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공정’일 것입니다.


결국 2010년대에 들어 다양한 실험과 비록 복잡하지만 대학의 특성과 개성을 살릴 수 있었던 수학능력시험을 토대로 한 입시제도는 매우 ‘단순화’되어 갑니다. 다시 학력고사라고 부르지 않을 뿐 학력고사와 같은 서열화된 성적 결과를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그나마 수시 제도를 통해 70% 이상의 학생이 수능 시험 외 다양한 방법으로 대학 진학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단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어도 대학 진학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다만 대학마다 전공마다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 선택이 쉽지는 않습니다. 연구와 학습이 필요한 영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25년여의 수학능력시험 도입 이후 실험과 도전, 변화와 발전은 2021년 오늘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수능시험의 도입 시점인 1994년과 비교해 보면 우리 대학 환경은 크게 바뀌어 있습니다. 대학 정원이 수험생보다 많아졌고 수도권 대학 집중 현상이 심해져 지방의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설득력 있게 가슴을 파고 듭니다. 현재 교육부의 가장 골치 아픈 숙제는 대학 정원의 조정과 생존 능력이 없는 대학의 구조조정입니다.


또한 대졸 취업희망자의 취업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고학력 인재들도 취업이 너무 어렵습니다. 이미 21세기 기업들은 고용 없는 성장에 익숙해져 있고 고용 없는 성장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회 현상은 대학 진학에 성공한 젊은이도, 대학을 포기한 젊은이도 모두 고통스러운 생존 경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의 바늘 구멍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를 늘려 사회적 불평등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석사, 박사 등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쳐나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고 하지만 석사, 박사 학위가 흔해진 만큼 학위가 없으면 승진도 어렵고, 창업도 어렵고, 고부가가치 직군으로 이동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공인중개사, 노무사, 세무사, 회계사, 법무사 등 라이선스가 있는 전문직이 과거와 같은 수입이 보장되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있으며 그래도 전문직이 비전도 있고 희망도 있다는 믿음은 커지고 있습니다. 지식인의 값어치가 떨어진 세상에 지식인의 지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지식사회의 단면입니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 대계획이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후배 세대를 교육하는 일, 인재 육성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대학의 위기는 국가 교육 계획의 위기입니다. 취업률이 대학 평가의 기준이 된다면 미래를 이끌어 갈 기초 과학자와 철학자, 인문학자는 대학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세계를 강타하는 문화 컨텐츠 강국의 이면에는 상품이 되지 못한 예술활동이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대학은 어쩌면 당장 돈이 되지 못해도 인류를 이롭게 할 수 있는 학문과 진리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탐구하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예술과 문화적 실험이 태동하는 젊음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능 인력도 배출해야 하지만 인류를 이끌어가는 학문적 깊이를 갖춘 학자도 배출해야 합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취업은 시키지만 학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이 너무 많습니다.


입시 제도의 변화와 지향은 고위 교과과정인 대학 교육의 변화와 지향과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기능을 하도록 교육 정책이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입시 제도여야 하고 그 인재를 장기적으로 키워내는 것이 대학이어야 합니다.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는 대전환의 대한민국에 우리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 칼럼니스트

KMAS(한국경영자문원) 교육전문 자문위원 박종서




KMAS(한국경영자문원) 교육전문 자문위원 박종서

▣ 경력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사

-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Pro-MBA

- 아소비교육 동북지사장


출처 : 어떠카지TV(http://www.kaji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