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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칼럼 21] 곧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평가’와 ‘보상’

필자는 조직의 리더로서 팀원들을 경쟁시키고, 경쟁의 결과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부여하는 경험을 오랜 시간 가졌다. 그런데 한 번도 ‘수월하고’ ‘평화롭게’ 평가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내린 평가의 결과에 나의 구성원들 모두가 인정하고 수용했던 적이 없다는 의미다. 평가와 피드백의 어려움은 책임자의 위치에서 평가를 진행해 본 리더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어려움일 것이다.




평가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평가 방식에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있다. 절대평가는 특정한 기준점을 설정하고 기준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면 모두에 동일한 결과를 준다. 운전면허증과 같은 라이선스를 주는 시험에 적합하다. 그런데 기준점이 너무 낮아 합격자가 너무 많거나 너무 높아 합격자가 아예 없으면 절대평가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되면 평가의 ‘타당성’이 의심을 받는다.




상대평가는 절대평가의 기준점이 너무 높거나 낮거나 하는 위험을 극복한다. 응시자들을 ‘특정 기준’에 근거해 서열을 매기고 서열에 맞는 보상을 준다. 얼핏 보면 가장 공정한 평가 방법인 것 같다. 최근 대학입시에서 수시 전형의 비중을 줄이고 정시 비중을 늘려 달라는 요구도 이렇게 ‘투명한’ 평가 기준에 의한 서열화가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요구였다.




문제는 상대평가가 서열화를 위해 만드는 ‘특정 기준’도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도달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공정하다고 믿을 뿐 절대 공정하지 않다. 그리고 충분한 자격과 역량이 있는 사람도 불필요하게 서열화되니 과도한 경쟁을 촉발하고 자원이 낭비될 수 있다. 결국 어떠한 평가도 장단점이 있어 공정하거나 객관적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서열화를 전제로 한 상대평가는 최우수 인재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더욱 끔찍한 평가 방식이다. 최고의 역량을 갖추고 아무리 높은 성적을 받아도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다. 등급별 쿼터를 정해 놓으면 비극은 심각해진다. 평가가 요구하는 능력보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서울대, 카이스트, 과학고등학교 등에 모여 있는 수재들에게 상대평가가 의미 있는 평가일까?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평가의 결과가 나오면 구성원 일부는 수용하지만 일부는 수용하지 않는다. 나와 무관한 타인의 평가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도, 본인에 대한 심사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교직원 평가에 따라 지급된 차등 보너스를 모두 모아 똑같이 나눠 갖는 선생님들도 있다.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이뤄져야 할 교사의 직무를 서열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경영실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이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의료, 교통, 통신 등 사회 기간 산업의 영역에 서열화를 통한 평가와 차등 보상제도가 꼭 필요한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타인의 혹독하고 냉정한 평가를 받고 겪게 되는 좌절과 손실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그래서 일찌기 러시아의 위대한 문호 푸쉬킨(Aleksandr (Sergeyevich) Pushkin, 1799~1837)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그보다 앞서 공자님도 논어 학이(學而編) 1장에 ‘인부지이 불온이면 불역군자호(人不知而 不慍 不亦君子呼)’ 라고 설파하셨다. *타인이 나를 몰라줘도 화내지 않는 것이 군자의 태도라는 뜻이다.




평가는 본인의 평가와 다를 수밖에 없다.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당사자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 나를 몰라준다는 억울함, 나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의심이 앞선다. 절대평가를 하든, 상대평가를 하든 원하는 결과를 받았을 때는 평가가 세상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생각된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결과를 받았을 때는 평가의 객관성, 평가자의 인격에 심각한 결점이 있어 보인다.

평가 결과에 대한 불복은 분노가 되고, 비난의 화살이 되며, 미움의 불씨가 된다. 분노를 참지 못해 조직을 떠나고 다른 일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좌절과 상실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평가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최근 애플, 구글과 같은 최고 인재들의 조직에서는 아예 ‘평가’를 없애기도 한다. 한 때 평가는 경쟁을 촉진하고 조직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효과적인 도구였다. 승진과 보상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속되며 평가의 결과는 ‘만족하는 소수’와 ‘좌절과 상실을 겪는 다수’를 낳았다. 승승장구하는 소수와 그에 속하지 못해 겉도는 다수, 아래쪽을 깔아주는 다수의 ‘실패한’ 구성원을 만들어 조직의 일체감을 훼손하고 충성심을 꺾는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최우수 인재들의 집단에서는 그 실효성이 폐기된 것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는 목표에 따라 KPI(Key Performance Index)를 설정하고 이를 측정(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합의한다. 이 과정이 Top-down이든 Bottom-up 이든 리더와 구성원의 소통을 통해 개개인의 보다 탁월한 역량과 헌신적인 노력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실제 기업에서는 평가의 의도와는 달리 소통과 합의는 남지 않고 목표와 결과만 남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평가는 구성원 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조직 내 평가 서열을 공개적으로 가시화시켜 팀웍을 깨고 위화감을 조장한다. 개인과 개인의 위화감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조직의 위화감도 만들어 낸다.




따른 과도한 보상의 격차는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 과거 모토롤라의 히트 상품 ‘레이저’ 휴대폰이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을 때 휴대폰 사업부가 아닌 모토롤라 임직원 대부분은 ‘레이저’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도한 성과 보상이 그것을 받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조직원에게 어떤 상실감을 주는지 생생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참고로 20세기를 이끌었던 첨단 테크 기업 모토롤라는 21세기에는 생존하지 못했다.

공정과 객관성의 얼굴을 가진 ‘평가’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KPI와 평가 방법을 철저하게 공정하게 개발해도 이미 노력도 하기 전에 좋은 결과를 포기해야 하는 구성원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 기준을 찾는다는 노력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좇는 일일지도 모른다.




21세기 다원적이고 창의적인 가치가 새로운 부를 만들어 내는 시대, 공정한 평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경쟁을 통한 보상에 매우 익숙하다. 어려서부터 비교하고(당하고), 쉽게 서열이 매겨지며 서열에 따라 애정을 받고 보상을 받고 자라왔기에 서열화에 익숙하다. 오랜 시간 경험을 하다보니 그것이 ‘당연’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왜 서열을 매기는 긴 줄 어딘가에 서 있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평가의 결과, 서열에 따라 달라지는 대우와 보상은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은 잘 안 하게 된다.




지금처럼 ‘하나의 기준’으로 다양한 재능에 서열을 쉽게 매길 수 있는 평가가 공정하고 좋은 평가인가? 그런 평가가 우리 사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촉진할 수 있는가? 평가의 기준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인가?




21세기의 평가, 평가 기준은 철저히 지속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허울뿐인 ‘공정’과 ‘객관성’에 매몰되기 보다는 협력과 연대를 높여 집단 지성을 이끌어 내고 다양한 재능에 골고루 동기부여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평가와 보상, 약육강식의 평가와 보상은 20세기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아직 관성이 남아 효과적일지는 모르지만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그런 평가와 보상 체계에서 세상을 이끌어 갈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동이 나오기 어렵다. 한 번 나오더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개성과 재능이 다른 모두가 함께 콜라보레이션하여 더 나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평가와 보상이 설계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보일지라도 개별 평가를 통해 차등을 두고 거르려는 노력은 이제 21세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협력과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와 독점과 독식의 분배 방식에 적절한 통제를 가해 보다 많은 기여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성원을 평가하고 교육하는 방식도 보다 지속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 더 많은 구성원의 재능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새롭게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 칼럼니스트

KMAS(한국경영자문원) 교육전문 자문위원 박종서




▣ 경력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사


-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Pro-MBA


- 아소비교육 동북지사장


출처 : 어떠카지TV(http://www.kajitv.com)